책과 독서라는 것은 내 삶의 너무도 오래되고 자연스러운 일부라, 새삼스레 시간을 내어 그 의미를 짚어보는 일이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글을 깨치기 전의 독서란 결국 부모님의 입술을 통해 전해지는 이야기들이었다. 유독 ‘이야기’를 사랑했던 나는, 대학로 극장에 앉아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공연을 보며 극에 푹 빠져버리곤 했다. 참지 못하고 “저 사람이 나쁜 사람이에요!”, “저쪽으로 갔어요!”라며 스포일러를 외치는 통에 엄마가 다급히 내 입을 막아야 했지만, 누군가를 방해할 의도 없이 그저 이야기에 온전히 몰입했던 탓이었다. 밤마다 목이 쉴 때까지 아빠가 읽어주셨던 『파랑새』나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이야기들도 여전히 선명하다. 엄마가 되고 나서야 깨닫는다. 아이의 마냥 해맑은 ‘한 번 더’라는 부탁에 기꺼이, 그것도 실감 나는 연기까지 곁들여 목이 쉬도록 책을 읽어주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는 것을. 돌이켜보면 아빠는 그 부탁에 단 한 번도 짜증을 낸 적이 없으셨다. 그렇게까지 온화하기만한 성격은 아니신데 말이다. 어쩌면 당신을 닮아 이야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딸의 모습이 내심 흐뭇하셨던 건 아닐까.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고, 여전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의 세계. 가족과 자주 여행 가던 설악산으로 향할 때면, 대관령을 넘는 굽이진 차 안에서 듣고 또 들었던 성우들의 오디오북 목소리들 역시 내 생애 첫 즐거운 탐독의 기억이다.
스스로 활자를 읽게 된 후부터, 나는 곧장 그 달콤하고 매혹적인 세계로 빠져들었다. 한 번 책을 쥐면 좀처럼 놓지를 못해, 잠자리에 들 때면 늘 부모님의 어쩔 수 없는 제지를 받아야만 했다. 엄마가 불을 끄고 나가시면 이불 속에서 작은 불을 밝힌 채 밤늦도록 책장을 넘기는 것이 나의 은밀하고도 즐거운 의식이었다. 그 비밀스러운 시간을 착실히 누린 대가로 단기간에 시력이 크게 나빠졌고, 이른 나이에 안경이라는 훈장을 달게 된 나를 보며 부모님은 몹시 속상해하셨다. 돌이켜보면 눈 건강은 지금껏 나를 쫓아다니는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이후로는 책을 읽을 때마다 단단히 주의를 들어야 했고, 부모님의 잦은 야간 점검이 이어졌다. 그러나 시력과 맞바꿀 만큼 열렬했던 탐독의 시간이었건만, 희한하게도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어떤 책들을 읽었는지는 기억이 흐릿하다. 오히려 그보다 더 어릴 적 아빠의 목소리로, 혹은 차 안에서 테이프로 들었던 이야기들이 훨씬 더 생생하게 각인되어 있으니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초등학교 고학년, 처음으로 학교 도서관 수업을 시작하며 느꼈던 감정은 ‘가슴 속에 나비가 파닥이는 것 같다’는 표현이 정확할 만큼 벅찬 떨림과 설렘이었다. 평일 오후의 나른한 햇살이 도서관 창문 너머로 따스하게 비쳐 들던 시간. 그곳은 내게 온전한 탐험과 모험의 세계였다. 마치 달콤한 케이크가 잔뜩 진열된 쇼케이스 앞에서 군침을 삼키며 단 몇 조각만을 신중히 골라내야 하듯, 나는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무엇을 읽을지 즐거운 고민에 빠져 어쩔 줄을 몰랐다. 책 맨 뒷장에 꽂힌 도서 대출 카드는 또 얼마나 근사했던가. 누가 언제 이 책을 거쳐 갔는지 알 수 있고, 나 역시 그곳에 이름을 적어 누군가에게 발견될 흔적을 남길 수 있다니. 세상에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내겐 경이롭고도 아름다운 선물이었다. 그때 만났던 수많은 책 중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창작과비평사에서 나왔던 J.R.R. 톨킨의 『호비트의 모험』 시리즈다. (지금 찾아보니 1980년대 후반의 번역본으로, 잘 알려진 '호빗' 이야기의 어린이판이었던 듯하다.) 그리고 시공주니어에서 출간된 『산적의 딸 로냐』. 깊은 숲과 산적의 성에서 자란 소녀 로냐의 모험담을 품에 안고 두근대며 활자 속 숲을 누비던 그 시간들은 참으로 눈부셨다.
중학생이 되며 나의 독서는 한결 진지해졌고, 점차 고전 소설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것이 온전히 나의 주도적인 의도였는지, 아니면 나도 모르는 사이 작용했던 부모님의 보이지 않는 방향 설정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고전 문학에 깊이 심취해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직도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있는 책들은 펄 벅의 『대지』라든지,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같은 작품들이다. 만 열세 살 남짓한 나이에 대체 그 짙은 감수성과 사랑, 삶의 묵직한 무게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였던 것일까. 여전히 마지막 장을 다 읽고 책을 덮었을 때의 감각들이 생생하다. 숨이 막힐 듯 벅차오르고 또 한없이 슬퍼서, 밤새도록 울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고등학생 시절의 독서는 다소 늦게 찾아온 사춘기와 맞물려 폭발적이고 왕성하면서도, 어딘가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구석이 있었다. 그것은 때로 도피적이기도 했고, 세상의 선과 경계를 넘나들며 좋고 나쁨의 양방향으로 세계를 흡수해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당시의 독서는 내 마음속의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그 지독한 성장통과 깊이 맞닿아 있었다. '독서가 위험할 수도 있을까?'라는 질문에,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만든 시기였다. 다행스럽게도 결과적으로는 그 시기를 무사히 잘 소화해 냈지만 말이다.
당시 나는 정형화된 추천 도서의 목록을 벗어나, 다소 허무주의적이고 세상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법한 활자들을 탐닉했다. 성(性)과 사랑, 그리고 삶 그 자체에 대해 상당히 조숙하고도 비관적인, 좋게 포장하자면 낭만적이고 실존적인 시각을 길러주는 책들을 무작위로 읽어댔다. 밀란 쿤데라의 모든 소설을 탐식하듯 읽어 치웠고, 파트리크 쥐스킨트나 알베르 카뮈, 프랑수아즈 사강이나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들도 마찬가지였다. 한편으로는 연극반 동아리 활동에 진지하게 임하며 당대의 유명한 한국 희곡과 작가들의 대본을 수없이 읽어 내려갔다. 이만희 작가나 이강백 작가의 시대 비판적이거나 저항적인 면모가 짙었던 당시 한국 희곡들을 통해, 나는 또 다른 차원의 감각들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있었다. 그 모든 독서의 여정을 그저 한 마디로만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나의 사춘기였고, 어른도 아이도 아닌 경계에 선 시기 나만의 치열한 탐색법이었다. 겉으로는 차분해 보였을지 몰라도 내면에서는 매일같이 거센 폭풍이 요동치고 있었고, 나는 실상 그 모든 혼란을 책이라는 창구로 풀어냈던 모양이다.
그토록 나의 감수성을 예민하게 벼려내고 뒤흔들었던 독서였건만, 대학생이 되면서 나의 독서는 '활용'과 '효율'이라는 단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전공 도서와 산더미 같은 참고 문헌들 사이에서, 도서관에서의 시간은 오롯한 독서라기보다 결국 활자를 매개로 한 공부의 연장선일 뿐이었다. 아무런 이유나 목적 없이 텍스트 자체에 빠져드는 ‘유희로서의 독서’는 점차 자취를 감췄다. 돌이켜보면 그런 순수한 몰입이 가능하기나 했을까 싶을 만큼 철저히 메말라갔다. 수많은 활자를 삼켰지만, 대개는 전공과 맞닿아 있는 지식들이었다. 만약 오직 취미라는 명목으로 책을 읽었다면, 가끔 독후감 대회에 입상하면 장학금이 쏠쏠했기에 당선되기에 적합한, 이른바 ‘글쓰기 좋은’ 책을 골라 읽었던 정도가 아니었을까. 아니면 영어 공부를 겸해 원서를 집어 들고 짐짓 재미를 느껴보려 애썼던 기억뿐이다. 취업을 준비하고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이 ‘목적성’은 한층 더 견고해졌다. 마케팅과 홍보 관련 서적들, 업무에 당장 쓸모 있는 인사이트를 주거나 효율을 높여준다는 책들만이 내 서가를 건조하게 채워 나갔다.
메말랐던 독서의 기쁨을 다시 마주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인생에 커다란 변화구가 날아들어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라는 막막한 질문과 맞닥뜨렸을 때였다. 결혼식을 올리자마자 신혼여행도 없이 짐을 꾸려 떠났던 싱가포르에서의 신혼 생활이 그랬다. 거의 십 년 가까이 단 한 번도 누려보지 못했던, 도무지 할 일이 없는 텅 빈 ‘여유’와 ‘한가로움’은 내게 낯설다 못해 당혹스러운 감각이었다. 남편이 새벽같이 출근하고 나면, '쿡쿠-우, 쿡쿠-우' 울어대는 아시안 코엘의 끊임없는 새소리에 눈을 떴다. 커피를 한 잔 내려 창가에 앉아, 무성하고 푸릇한 열대의 여름 나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살갗에 감기는 축축한 습도와 후덥지근한 공기, 슬리브마저 땀에 달라붙던 끈적한 감촉, 높은 천장 위로 윙윙거리며 돌아가던 실링팬. 굳이 유리가 필요할까 싶은 거대한 창문을 열어젖히면 때로는 무지막지한 스콜이 쏟아졌고,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갠 뒤엔 열대우림 특유의 짙은 흙내음과 식물 향기가 훅 끼쳐왔다. 그 낯선 감각들이 여전히 내 안에는 생생하게 맺혀 있다. 아는 이 하나 없고 딱히 나갈 곳도 없던 그 낯선 도시에서 내가 기댈 수 있는 것은 결국 다시 책이었다. 주로 그 거대한 창가에 앉아, 때로는 아파트 수영장에 내려가 활자를 읽고 또 읽었다. 지금 생각하면 달콤한 휴가처럼 완벽한 여유였을 텐데, 그때의 나는 그 텅 빈 시간이 왜 그토록 버거웠던지. 그 온전한 한가로움을 기꺼이 누리지 못한 것 같아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고요했던 싱가포르를 떠나 바쁘고 활기찬 홍콩으로 이주하면서, 내 삶의 궤적은 또 한 번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틀어졌다. 화려한 도시의 한복판에서 나는 의욕적으로 와인 디플로마 과정을 시작했고, 본격적인 공부에 뛰어들면서 독서의 목적은 다시금 서늘할 정도로 선명해졌다. 홍콩에서의 첫 보금자리는 가장 복잡한 도심 한가운데, 케네디 타운에 위치한 53층 플랫이었다. 낮에는 망망대해 같은 바다를, 밤에는 눈이 시리도록 번쩍이는 마천루의 야경을 내려다보며 산더미 같은 과제와 책 무더기 속에 파묻혀 지냈다. 명성대로 홍콩은 아시아의 와인 허브이자 차이나 머니가 몰려드는 거대한 와인 무역 도시였다. 그 화려하고 눈부신 중심부에서 세계 각국의 와인을 시음하고, 경매장을 오가며, 수많은 테이스팅 이벤트와 애호가들 사이에서 모든 순간의 경험과 배움을 지독하게 흡수하려 애썼다. 그 시절 책과 독서가 내게 필요했다면, 오직 그 화려한 세계로 진입하기 위한 지식의 무장으로서였다.
그러다 예고도 없이 삶이 멈춰버린 시간이 찾아왔다. 포도 농사에서 봄에 내리는 서리는 치명적이다. 이제 막 조심스레 움트려던 가녀린 새잎들이 차갑게 얼어붙고 다쳐, 끝내 피어나지 못한 채 한 해의 농사 전체를 망가뜨리기도 하는 무시무시한 존재. 내 삶에도 그런 봄의 서리 같은 잔인한 시기가 덮쳐왔다. 상실감과 우울의 깊이는 너무도 아득해서 어떻게 회복해야 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고, 나는 그저 나 자신을 깊은 심연으로 고립시킬 뿐이었다. 당시엔 곁에 붙잡을 신앙이랄 것도 없어, 빠져나오는 길은 멀고 또 지난했다. 끝없이 피폐해져 가는 나를 더는 지켜볼 수 없었던 남편은 이사를 제안했다. 그렇게 우리가 찾아든 곳은 '마완(Ma Wan)'이라는, 홍콩 섬에서도 페리를 타고 25분을 더 들어가야 하는 작은 섬마을이었다. 해변을 낀 지역과 섬이 수없이 많은 홍콩이지만, 나는 가장 조용한 곳으로 웅크려 숨어들고 싶었다. 작은 섬은 부서질 대로 부서진 나를 소란한 세상으로부터 가만히 숨겨주었다. 
나는 다시 책을 쥐고 섬의 해변으로 나갔다. 밀려오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활자를 읽어 내려갔다. 때로는 작은 광장에 나가 두툼한 버터를 끼워 넣은 따뜻한 파인애플 번을 먹고, 이가 듬성듬성 나간 잔에 담긴 짙은 밀크티를 마셨다. 아침 타이치를 수련하는 주민들을 바라보다가, 돋보기를 끼고 신문을 읽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틈에 섞여 나도 조용히 책을 펼쳤다. 괜스레 고기잡이배를 마중 나가 생선을 사 오기도 하고, 작은 마을 시장에서 홍시를 잔뜩 사 들고 인적 없는 외딴 해변을 찾아가 종일 활자에 파묻히기도 했다. 당시 내가 파고들었던 책들은 주로 문명사와 역사에 관한 것들이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카렌 암스트롱의 『축의 시대』, 팀 마샬의 『지리의 힘』 같은 책들. 차라리 그 거대한 역사와 문명이라는 거시적인 흐름을 가만히 관망하는 편이, 당시의 내겐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는 통로가 되어 주었다. 목적도 효율도 잊은 채 스스로를 깁고 치유하기 위해 읽어 내려갔던 그 독서의 시간들은, 자연스럽게 와인이라는 나의 전문 분야와 맞물려 책을 쓰게하는 자양분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와인 전문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게 가장 편안하고 익숙한 세계는 결국 책이고 독서이며 글이다. 와인을 공부한다지만 내가 대부분의 시간 동안 하는 일은 텍스트를 읽고 글을 쓰는 것이다. 그렇게 두 권의 책을 낸 작가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나는 꽤나 ‘노련한’ 독서가가 되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나는 ‘노련하다’거나 ‘능숙하다’는 그 감각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노련해지고 싶지 않다. 능숙한 사람으로 굳어지고 싶지 않다. 그 단어들에는 도무지 설렘도, 떨림도 없다. 물론 어느 순간에는 나의 그 노련함과 능숙함에 더할 나위 없는 만족과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아, 이거지!' 싶은 쾌감. 그리고 그 능숙함은 이내 ‘세련됨’으로 발현된다. 스스로의 눈에도 그 세련됨이 명확히 감지되는 순간이 있고, 실은 우리의 삶에서 그 세련됨은 때때로 많은 유익과 편의성을 제공해 준다. 세상은 세련됨을 사랑하니까. 애써 세련됨에 도달했으면 눈 딱 감고 그 궤도를 매끄럽게 돌아나가면 될 일인데, 나는 기어이 그 노련함과 능숙함, 세련됨의 문턱에서 멈춰 서고야 만다. 그저 모른 척 지나가면 편할 것을, 내 안의 아주 깊고 단호한 무언가가 자꾸만 제동을 거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 거부할 수 없는 멈춤은, 매끄러운 관성에 휩쓸려 나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내 삶을 붙들고 있는, 나를 너무도 사랑하는 보이지 않는 선한 힘일지도 모르겠다.
올해 하반기는 계획상 세 번째 책을 준비할 타이밍이었다. 주제도 대략 윤곽이 잡혔고, 이제 글을 써 내려가기만 하면 되었다. 세 번째까지 비슷한 결의 책을 내는 것은 나의 1차적인 목표이기도 했다. 간헐적이긴 해도 시즌제로 유튜브를 운영해 온 노하우도 쌓여 있었다. 이 익숙한 사이클을 딱 한 번만 더 잘 굴려가면 될 일이었다. 두 번째 사이클을 거치며 나는 꽤나 능숙하고 세련되어졌으니, 이번에도 그저 모른 척 그 유연한 파도를 타고 쭉 미끄러져 나가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어찌 인생이 마음대로 되던가. 돌이켜보면 올 상반기는, 아니 애초에 십여 년의 홍콩 생활을 뒤로하고 두바이로 이주했던 작년 하반기부터 내 삶에서 예상했던 대로 흘러간 것은 거의 단 하나도 없었다. 내 인생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유난스럽고 낯설었으며, 때로는 감당하기 벅찰 만큼 강렬하게 나를 뒤흔드는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그 와중에도 기어이 해내야만 했던 일들의 리스트를 억척스레 지워낸 것만으로도 스스로 대견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모든 치열한 과정의 여파였을까. 결국 내 안의 브레이크가 강하게 걸렸다. 오래전부터 미뤄두었던 것들, 그러나 언젠가는 꼭 마주해야 했던 내 안의 질문들을 깊이 들여다보자는 마음. 짚고 가야 함을 알고는 있었으나, 막연하게나마 3년 후쯤, 세 번째 책까지 무사히 출간하고 그 익숙한 사이클을 성공적으로 모두 마친 뒤에야 돌아보려 했던 일들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내 마음은 자꾸만 ‘지금’이라고 떼를 쓴다. 이미 반쯤 열려버린 문을 이대로 모른 척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닫고, 다시 능숙하게 익숙한 삶의 궤도로 돌아갈 만큼 난 노련하지 못하다고. 그리하여 나는 지금 두바이에 앉아 있다. 40도에 육박하는 뜨거운 창밖을 내다보며, 얼음을 잔뜩 채운 커피 한 잔을 곁에 둔 채 다시금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반질반질한 능숙함보다, 세공되지 않은 날것에는 분명 특유의 아름다움이 있다. 설령 그것이 세련된 외피를 두르지 않았다 해도, 그 안에 품은 진심과 투박한 열정, 순수한 욕망의 공명은 세상 그 무엇으로도 구하거나 살 수 없는 귀한 것이다. 물론 이 날것의 생명력이 세련됨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기꺼이 세련됨을 잃지 않으면서도 이 날것의 아름다움을 함께 추구하고자 하며, 그런 이상적인 형태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믿는다. 다만 능숙하고 노련해질수록 이 순수한 원형을 지켜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나는 때로 지독한 갈증에 가까운 마음으로 그것을 열렬히 사랑한다.
홍콩에서 시작된 이 작은 북클럽에 내가 이렇게 오래 애정을 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백하건대, 여전히 남아있는 그 몸에 밴 ‘능숙한’ 독서 습관 탓에 이 순수한 열정과 기쁨의 작은 축제에 매번 온전히 녹아들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운영진 중 한 명으로, 혹은 그저 조용히 동석하여 이 모임을 지켜보는 사람으로라도 계속 곁에 머물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하나다. 내가 삶의 굽이 어디쯤에 슬며시 두고 왔던 독서의 순수한 애정과 기쁨, 그 온전한 행복을 이 북클럽의 멤버들이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내가 무엇인가를 완전히 소유하지 못한다 해도, 곁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되고 행복할 때가 있으니까. 그리고 이제는, 이 북클럽이라는 최초의 시작점 홍콩을 중심으로 다시금 선을 이어보고 싶어졌다. 나의 새로운 정착지인 두바이,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주명 언니의 터전이 된 뉴욕의 점들을 이어서 말이다. 능숙하고 세련된 방식은 던져두고, 오직 읽고 싶다는 순수하고도 투박한 ‘욕망’ 그 자체로 우리들의 점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다시 연결해 보면 어떨까.
그러니까 나는 왜 여전히 또 새로운 도시에서, 이 낯선 곳에서 또 다시 책을 펼쳐 드는가. 누군가 묻는다면 이제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매끄러운 세련됨이라는 허울에서 잠시 벗어나, 조금은 미련하고 고지식하더라도 가장 뜨거웠던 그 독서의 시작점으로 다시 깊이 회귀해 보고 싶기 때문이라고.
Monica Seokin Lee 이석인

Writer · Wine Expert · Dubai

『포도에서 와인으로』, 『포도빛 바람이 불어오는 곳, 부르고뉴』를 썼다. WSET Diploma를 취득했다. 서울과 싱가포르, 홍콩을 거쳐 두바이에 살며, 책과 와인, 예술과 도시를 읽고 그 사이에서 발견한 것들을 기록한다.